오늘이 마지막이라면.... - 어떤 죽음 맞을지 묵상해보자 - '제가 죽거든 이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써주십시오’ 라고 메모해서 수도공동체가 관리하는 앨범에 사진을 끼워 둔 어느 수녀를 본받아 나도 흑백사진 한 장을 들고 가 그리했더니 담당 수녀는 ‘갑자기 왜 그래요?’ 하며 마음이 이상하다고 했다. 우리 각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지를 그 누구도 예측할 순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매일 한 번이라도 자신의 죽음을 앞당겨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과 이웃을 향해 구체적으로 고별 인사도 해보고 짧은 유서도 작성해 보자. 상상으로나마 관 속에 누워보고, 땅 속에 잠시 묻혀도 보자. 그리하면 스스로 숙연해지고 조금은 더 겸허한 모습이 되어 일상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먼저 떠난 이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시간을 아껴 쓰고 마음을 맑게 가꾸라고. 늘 자기만 앞세우는 교만하고 이기적인 독선, 탐욕, 자기 도취의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라고 말한다.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때 좀 더 많이 웃고 즐겁게 살라고, 자연과 인간과 사물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늘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도 깊이 감사하는 연습을 하라고 말한다. 한꺼번에 몰아서 하려면 너무 힘드니 평소에 화해하고 용서하는 너그러움, 남을 배려하는 사랑을 더 많이 연습해 두라고 당부한다. 끊임없이 인내하고 양보하는 ‘작은 죽음’을 평소의 삶에서 미리 연습해 두지 않으면 죽음의 순간이 올 때 마무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모처럼 눈이 많이 온 날 우리가 만든 눈사람이 꽤 여러 날 녹지 않다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녹아버린 걸 보고 내가 말했다. 우리도 죽을 때 저 눈사람처럼 남에게 부담 안주고 깨끗하게 녹아버리면 좋지 않을까요? 난 가끔 죽음이 두렵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후배 수녀가 말했다. ‘수녀님, 너무 걱정 마세요. 사경을 헤매던 제 경험에 의하면 그 세계는 의외로 아주 따스한 빛의 나라로 느껴져서 그 후론 누가 죽었다고 해도 전처럼 슬프지가 않답니다. 오히려 축하해 주고 싶을 정도죠. 내 인생관도 달라져서 이렇게 바보처럼 즐거이 웃기만 하잖아요. 살아 있는 오늘에 대한 충실성,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야말로 영원으로 이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새처럼 명랑한 그의 목소리는 나에게 위로가 됐다. - 최선을 다하고 겸허한 모습으로 - ‘나도 올 한해는 더 많이 놀라워 하고, 더 많이 고마워 하고, 더 많이 남을 챙겨주는 사랑을 해야지. 말도 행동도 기도도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성실을 다해서 살아야지’라고 다짐하는데 눈에 띄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함박눈 내리던 날, 하얀 길로 떠나간 ‘하얀 길’의 동화작가 정채봉님이 하얀 꽃 속에 둘러싸여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초췌하지만 밝은 얼굴로 서명까지 해서 건네준 그의 책에서 ‘오늘’이란 시 한 편을 골라 읽으며 기도의 촛불을 켠다.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 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았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지 않았네 친구의 신발을 챙겨주지 못했네 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 오늘도 내가 나를 슬프게 했네…. 이해인(시인 ·부산 성베네딕도 수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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