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寫眞)으로 보는 금호교회 60년사 백범(白凡)학원(學園)의 역사(歷史)를 찾아서 서울특별시 성동구청 문화체육과 류경애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금호동에 백범학원과 김구 주택이 있었다고 하는데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어떻게 저를 알았느냐고 물으니 백범 김구 기념관에 알아보니금호교회 조병복 장로가 잘 알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2008년 사진(寫眞)으로 보는 금호교회 60년사를 편집할때 자주 전화를 해서 알려주신것같고금호교회 연혁에"1949 2. 13 이응화 목사와 이무호목사 주재하에 13명의 교우가 성동구 금호동 4가 548 -2 백범학원에서 창립예배를 드리다."라는 것을 보고백범학원에 대한 고증을 찾기위해서 인것 같다. 금호교회 창립40년사(1949년~1989년 이광선 원로장로 편집) 106쪽에2. 교회창립 40주년의 회고(김성억 목사) 2) 금호교회 시작에 보면 잘 기록되어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금호교회는 한국이 일제(日帝)의 쇠사슬에서 해방이 되고 약간의 세월(3~4년)이지나며 해방의 기쁨도 사라지고 38선을 중심으로 남북 분단의 현실이 다가오고 남북의 갈등이 심해져 가는동안 북한 공산권내에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성도들과 우익진영 사람들은 속속 월남을 하고 있을 무렵이다. 그때 상해(上海)임시정부 주석(主席)으로 계시던 김구 선생님께서 월남해온 피난민들을 위해금호동에 난민주택(지금도 김구 주택이 있음)을 수백세대 살수 있는 주택으로 기다란 계사(鷄舍)모양으로 지으시고 간을 칸칸이 막아 비바람이나 막을 수 있는 난민주택과 피난민 자녀들을교육하기 위해 김구주택에서 도랑건너(그때는 도랑에 복구공사를 하기 전이었다.) 언덕밑에운동장(지금 혜성마트 자리)을 닦고 가교사 건물을 지어서 백범학원(白凡學園)이라고 했었다."금호교회가 1949년 2월13일 백범학원에 교섭해서 첫 예배를 드렸는데 인원은 13명이었다."라고 지난 3일(금) 김준곤 과장님과 금호교회 엘림하우스에서 만나 1953년 이후의 금호동의 김구 주택과 금호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백범학원이 있었던 장소에 대해서는 6.25전이라 잘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위 사진을 보면 백범학원개원식(白凡學園開園式)은 단기 4282년(서기 1949년) 1월27일에 있었고금호교회는 백범학원 개원식 후 약 보름후인 1949년 2월13일백범학원에서 13명의 성도들이 모여 이응화 목사님의 인도로 첫예배를 드렸다. 7일(화) 성동구청 문화체육과에서 또 전화가 왔다.백범학원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며 Tbroad 보도국에서 인터뷰( 촬영)를 하고 싶다고... 걱정을 하며 생각하던중 1952년에 금호동에 피난오신 고봉서 장로님께 전화를드리고김용언 장로님께 당시 상황을 알어보며6.25전 백범학원에서 첫예배를 드릴때 참석하신 고 선우복 권사님의 아들이신박선효 집사님께 연락하여 9일 11시에 구청직원과 엘림하우스에서 만났다. 6.25전에 금호교회 살았던 박선효 집사님께서 옛 기억을 상기하며백범학원은 지금 혜성마트 지리에 있었으며6.25때 없어졌다고...사진을 보며 회상하니 백범학원 건물 뒷산은 대우 아파트 짓기전의 산(山)모습같다. (백범학원 자리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고봉서 장로님) 백범 학원과 김구주택에 대해서 역사를 찾아 잘 정리하여금호동역사를 후세 잘알렸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수고하시는 성동구청 문화체육과 박수를 보낸다. 1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