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 특새(특별새벽기도회) 19일, 기도는 하나님의 등에 업히는 것 - 2차 특새도 어느덧 종반을 향하고 있다. 주님의 은혜의 빗줄기를 맞으며 노래하며 춤추며 기쁨으로 달려왔던 특새의 시간들이 우리의 기억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은혜들은 우리 가슴 속에 살아서 우리의 신앙이력을 새롭게 써줄 것이다.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불편을 감수하며 본당 통로 바닥에 앉아 기도하던 모습,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새벽 1,2시를 마다 않고 차를 달려 교회로 향했던 시간 등 특새에 참여한 성도들 각각의 모습은 가슴 뭉클한 자취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특새 19일, 그 끝 자락에서 옥한흠 목사가 사랑의교회 성도들과 오랜만에 만나 말씀을 통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 빌립보서 4장 6,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를 본문으로 전해진 옥한흠 목사의 메시지는 성도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며 하나님께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으로 인도했다. “진짜 능력 있는 크리스천은 큰 것을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처럼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시대적으로 한번씩 위대한 일을 체험하는 능력과 역사는 모두에게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굵직굵직한 일들에 특별히 선택하신 몇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은 이름도 빛도 없이 평생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평범한 성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 ‘우리’, 평범한 존재들인 ‘우리’는 어떤 점에서 세상 사람과 다른가, 어떤 점에서 능력이 있는가, 감동을 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 다움이 있는가? 그런데 무슨 대단한 이적, 기사를 행해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기도 몇 시간 더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평범한 것에서 표가 날뿐입니다. 염려를 다루는 자세, 염려를 극복하는 비결을 갖고 사는 데서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은 복잡합니다. 염려거리가 산적해 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보면 염려하기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전에는 한반도 내에서 똑똑하고 잘나서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내가 아무리 잘해도 다른 나라의 압력에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가난하게 될 수도 있고, 엄청난 질병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길에서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실패가 과거에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똑똑하다는 사람도 실패합니다. 아이 하나 있으면 염려 주머니가 다섯 개나 되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다해줘야 합니다. 노후와 죽음에 대한 걱정도 있습니다. 인간은 염려를 떼놓고 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실존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은 염려에 대해 단호히 경고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걱정하지 말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시면서 무조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무염려의 상태를 유지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이 염려를 극복하는 기도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염려를 극복하는 기도가 풍성해져서 여러분의 염려를 핸들링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첫번째 기도의 특징은 ‘선택’에 있습니다. 본문 말씀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와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사이에 ‘그 대신’이라는 말을 넣읍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그 대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감사함으로~’ 이렇게 염려를 극복하는 기도는 선택의 문제가 됩니다. 염려할 것이냐, 기도를 할 것이냐? 염려를 뿌리치고 기도할 것이냐, 기도를 뿌리치고 염려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선택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염려가 생길수록 기도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염려가 다가오면 그 염려에 한참 끌려다니다가 어느 순간 ‘기도해야지’하며 되돌아옵니다. 이 태도는 반드시 버려야 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염려를 버리고 기도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면 염려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은혜의 샘이 터집니다. 그런데 선택을 잘못 하면 우리의 모습은 초라해지고 비참해집니다. 일, 웃음, 기도가 인간됨의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지만 기도는 인간의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우리는 시시콜콜한 것에서부터 큼직한 제목까지 무엇이든 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기도의 특권과 은혜를 가지게 됐습니다. 기도는 예수 이름을 신뢰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신실한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근본 핵심은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의 선택. 우리의 대부분은 염려반, 기도반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하기로 작정하시고 주님께 다 내어놓으십시오. 그러면 염려가 맥을 못 출 것입니다. 두번째는 ‘발견’입니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염려가 있는데 감사거리가 눈에 들어올 것 같습니까? 보기 좋은 수식어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다 보면 눈을 감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감사거리가 하나씩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도와주세요’라며 기도하다가 어느새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놀랍게도 감사를 발견하는 망원경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멀리 있던 걸 가까이 끌어당겨서 감사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염려가 설 땅을 잃어버립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는 말씀처럼 더 많이 감사하기 위해 기도합시다. 세번째는 ‘집중’입니다. 본문 말씀에 ‘기도하라, 간구하라, 아뢰라’고 합니다. 사실 똑 같은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세 번이나 반복하는 것은 집중과 강조를 가르칩니다. 여러 가지 말씀으로 기도응답에 대해 약속하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5분을 해도, 10분을 해도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부도 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집중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를 놓습니다. 하나님은 집중하며 매달리는 사람에게 기도 안에서 변화산을 경험케 하실 것입니다. 네번째는 ‘체험’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이 말씀은 응답과 관계가 없습니다. 응답이전에 평강, 마음의 평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비에 가깝습니다. 평강이 기분이라면 금방 날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등에 업히는 것입니다. 염려가 아무리 많아도 염려를 극복하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염려를 다루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시작은 염려의 끝입니다. 그러나 염려의 시작은 기도의 끝입니다. ” -10월 1일 특새(특별새벽기도회) 옥한흠 목사 메시지 중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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