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마리아
보라매 공원에 김마리아 동상
뮤지컬·웹툰 등 다양하게 만나는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7일 서울놀이마당서 공연… 7일부터 국회의원회관 전시회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
고대하던 1919년 3월 1일, 세계만방에 조선의 독립을 알린 2·8독립선언에 힘입어 3·1운동은 시작되었다. 온 세상에 대한독립만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태극기가 휘날렸다. 김마리아 열사 또한 남대문역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했으나, 이로 인해 학생 독립운동의 배후로 지목되어 서대문 감옥(1923년,에 수감된다. 당시 서대문 감옥에 투옥된다는 것은 일제의 악랄하고도 잔인한 고문이 있다는 뜻과 같았다. 열사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고문을 받았다.
일제의 모진 탄압 후 출감한 열사는 몸도 마음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진 느낌이었다. 김마리아 열사는 그간 상해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하고, 여성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라는 조직을 더욱 견고하게 재정비했다. 이것이 조선을 위한 일이며, 조선을 위한 일이 곧 자신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상해 임시정부의 권유로 상해로 망명한 열사는 미국 유학을 통해 민족계몽에 계속해서 앞장섰다. 그러나, 그렇게 평생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살았던 열사는 고문 후유증으로 결국 하늘의 별이 된다. 광복을 바로 눈앞에 두고 말이다.
김마리아 열사의 어록 중 나의 가슴을 후비고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라는 말이다. 삶을 온전히 서로에게 맞추고, 고귀한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 의식을 독립과 한 것이다. 우리는 늘 불가능한 일을 만들어낸다. 가보지 않았기에, 해본 적이 없기에, 보이지 않기에 그렇다고 말한다. 100년 전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의 그 울부짖음도 일본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터무니없는 일을 통해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고, 내일을 기약하며, 과거를 상기한다. 당신이 가진 좋은 가치관과 철학을 포기하지 마라. 그것은 원래 볼품없어 보이나 그 안은 빛나는 황금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도 안된다는 평을 듣더라도 좌절하지 마라. 오히려 볼품없고 남들이 지적한다면 밀고 나가라. 그것이 김마리아 열사가 조선의 독립과 결혼해 조선을 지켜낸 것처럼, 당신이 원하는 바와 결혼해 그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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