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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하지 말라
이화영
세상은
온통 불평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정치가들이 불평하는 이야기
자영업자들이 불평하는 이야기
노동자들이 불평하는 이야기
회사에서도 불평
가정에서도 불평
가진 사람들이나 못 가진 사람들이나
많이 배운 사람들이나 덜 배운 사람들이나
가르치는 사람들이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나
모두 불평한다
부정적인 눈으로 보면
모두 불평거리다
그러나 사랑의 눈으로 보면
모두 기도거리다
성경은
불평하지 말라고 한다
불평으로는 어느 것 하나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다
이 화 영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야 할 성이 있다.
여리고 성이다.
여리고의 왕은 성문을 걸어 잠그고
군사들에게 성을 굳게 지키게 했다.
그런데 이런 여리고 성이 힘없이 무너졌다.
약해서 무너졌나?
군사들이 없어서 무너졌나?
여리고 성에는 왕도
용감한 군사들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하나님이 없었다.
하나님이 없는 나라
하나님이 없는 성읍은
아무리 강해도
모래성 같이 무너진다.
하나님이 없는 가정
하나님이 없는 인생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시고 성을 지켜주셔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렵다.
실패하지 않을까?
병들지 않을까?
더 아프지 않을까?
사고가 나지 않을까?
죽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현실이다.
그렇지만 선포하고 나아가라.
믿음으로 선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한눈 팔지 않고 사는 것이다.
악한 환경이나 나쁜 상황을 보지 않고
오직 주만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에게 은혜를 주셨다.
두렵지 않게 하셨다.
담대하게 하셨다.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탄식은 노래가 되고
죽음은 생명이 되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가 나의 목자일 때
그때
비로소
내가
복이 되고
평안을 얻고
의로운 길을 가고
믿음으로 살며
용서하고 사랑하며
항상 주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누리며 산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나의 고백이요
영원한 나의 찬송이 되게 하라.
행복한 사람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겁게 묵상하며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바랬다.
열납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흡족하게 받으신다는 말이다.
스바냐 3장 17절 말씀대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는 것이다.
이러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뜨겁게 묵상하자.
하나님께서 흡족하게 여기시고
열납하신 것만큼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터가 무너질 때
살다 보면
터가 무너질 때가 있다.
실패하고, 틀어지고
깨지고, 병들고, 잃을 때가 있다.
이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터가 무너질 때
우리가 피할 곳은
오직 하나님의 품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다.
다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는 터는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 피하라.
예배의 자리로 나오라.
기도의 자리로 오라.
하나님께 피하는 자마다
주님의 얼굴을 보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것이다.
여호와뿐이시다
날이 갈수록
평안할 수 없는
딱한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기상이변
치솟는 물가
몸은 더 약해지고
아픈 곳은 더 늘어나고
상태는 더욱 나빠진다.
기쁨이 어디 있는가?
평안이 어디 있는가?
안전이 어디 있는가?
구원이 어디 있는가?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하나님께 있다.
그러기에 두 손을 든다.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옵소서.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뿐입니다.
복 있는 나무
나무가
온갖 수고를 다 하여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나무가 열매를 먹지 않는다.
사람이 먹는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새나 짐승이 먹는다.
그것도 아니면 땅이 삼킨다.
이것이 열매의 복이요
나무의 복이다.
복 있는 사람은
해로운 사람이 아니다.
이로운 사람이다.
복되게 하는 사람이다.
열매를 맺는 사람이다.
열매로 이롭게 하고
배를 불리고
즐겁게 하고
생명을 살린다.
나무처럼 복이 돼라.
하나님은 복되게 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평범에서 비범으로
디모데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비범할 수 없는
환경적, 신체적, 성격적인 요건이 많았다.
그러나 평범을 뛰어넘어
초대교회를 지키는
비범한 인물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그에게 거짓 없는 믿음을 심었다.
이 믿음에 사도 바울이 불을 지폈다.
그의 믿음 위에
성경의 지식을 더했다.
성경을 가르쳤다.
거짓 없는 믿음 위에
말씀의 능력과
성경의 지식이 더해질 때
맹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이
약함을 강함이 되고
평범은 비범함이 되었다.
위로의 하나님
부모가 아이를 안아 준다.
만져 주고, 업어 주고
품어 준다.
부모는 위로하는 존재다.
아기는 안기는 존재다.
부모의 품에
안겨서 자라고
업혀서 자란다.
결국 사람은
엄마의 품을 떠나 자랄 수가 없고
하나님을 떠나 살 수가 없다.
아기가 울면
엄마가 하던 일을 멈추고
급하게 뛰어온다.
만져서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서 젖을 먹이고
업어서 안심을 시키고
품어서 평안하게 위로한다.
이것이 어머니의 위로요
자비하신 하나님의 위로다.
하늘에서 별과 같이
좋은 교회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교회다.
두기고 같은 신실한 사람
오네시모 같은 충성된 사람
에바브라 같은 기도의 사람
유스도 같은 위로의 사람
아리스다고와 마가 같은 따뜻한 사람
눔바 같은 축복의 사람
아킵보 같이 전도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다.
바울은 로마 황제나
유명한 장군의 이름을 소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
교회를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헌신한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며
땅에서보다
하늘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것이
가장 귀하고 복이 되기 때문이다.
실력자가 돼라
데살로니가는 바울이
3주 밖에 있지 못했다.
이만큼 박해가 심했다.
바울은 이런 역경 가운데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실력을 갖추라고 명한다.
기쁨이라는 실력
기도라는 실력
감사라는 실력이다.
이런 실력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아닌
너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나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믿음에서 나온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신앙의 뼈대요
믿음의 힘이요
신앙생활의 실력이다.
믿음의 실력으로 늘 푸르게 살라.
현세적인 회복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회복은
영적이고 내세적인 회복만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시고
슬픔을 감사로
애통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현실적인 회복이다.
살아서 받는 현실적인 회복이다.
그러므로 나는 안 돼
나는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회복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용서하고 축복하라.
생각지도 못한
회복의 은혜를 받을 것이다.
실전처럼 살라
인생은 한번 산다.
풀은 죽었다가
봄이 되면 다시 살고
나무는 넘어져도
다시 새싹을 피울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두 번 사는 것이 아니다.
연습이 없다.
남이 살아 주지 않고
살아 주지도 못한다.
내가 사는 것이다.
되돌릴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음은 너의 것이며
동시에 나의 것이다.
얼마를
살지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실전(實戰)처럼 살라.
십자가 신학
번영신학은
세상적인 복에만 집중하게 한다.
가난은 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난신학은
사랑의 실천보다 투쟁에 집중한다.
부자들을 미워하고 가난을 무기로 삼는다.
복음 신학
십자가 신학만이 바른 신학이다.
복음신학은
예수님을 바라보게 한다.
예수님이 가장 귀한 분임을 알게 한다.
십자가로 나아가게 한다.
십자가 신학은
말씀에 순종하게 하고
예수님으로 충만하여
참된 위로자가 되게 하며
마침내 구원의 항구에 이르게 한다.
고난의 파도가 아무리 밀려와도
아름다운 소망의 해안에 다다르게 한다.
욥의 외침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의 심정을 잘 모른다.
눈이 좋은 사람은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의 사정을 모르고
귀가 밝은 사람은
귀가 어두운 사람의 형편을 잘 모른다.
배가 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잘 모르고
잠을 잘 자는 사람은
잠 못 이루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의 형편을 잘 모르고
장이 좋은 사람은
죽 한 숟가락을 먹고도
배 아픈 사람의 사정을 잘 모른다.
입장과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하라.
나는 네가 아니고, 너는 내가 아니기에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말라.
상대방의 말이 아닌, 형편에 집중하라.
소망이 다 끊어져도
욥은 사방이 막혔을 때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친구들을 향하여 외친다.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신다.
그가 나를 위로하시고
나의 무고함을 변호하시고
그가 나를 구원하신다.
욥이 말하는 구속자는 성자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담당하시는 사역이
구원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욥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과 함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
세상의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지고
검푸른 성난 파도가 밀어 덮쳐도
부활 소망이 있다면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능력으로
고난 가운데서 승리하라.
부활의 증인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욥의 친구들은
고난의 원인과 이유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욥의 고난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연구했다.
고난 중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왜 내게 이런 일이 있느나며
고난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다.
욥은 자신이 당한
고난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을 굳게 믿었다.
그 믿음대로
욥은 순금이 되었다.
고난을 축복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꾼
축복의 주인공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미래의 주인공
누가 미래의 주인공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고난을 이긴 사람이다.
누가 축복의 주인공인가?
주의 십자가로
누가 승리의 주인공인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고난 중에
신세타령만 하다가 끝나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고난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고난을 유익으로
고난을 구원으로 바꾸는 미래의 주인공이 돼라.
은혜의 강물에 잠겨
사도 바울은 능력자다.
그가 가진 손수건만
갖다 대도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다.
심지어 죽은 자도 살렸다.
그러나 그도 아팠다.
얼마나 힘들고 아팠는지
자신의 병을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했다.
성경은 그의 병명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분명한 것은
그에게 가시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었고
이런 질병이 있음에도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불평하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사역을 중단하지 않고
더욱 주의 일에 힘썼다.
바다 같은 사랑과
강물 같은 은혜에 잠겨
고통을 잊고 기도하며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