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은 대단히 간단한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박한 사건 속에 감추어 있는 두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1. 안식일의 은혜 우선 예수님이 안식일 하루를 어떻게 보내셨는가를 간단히 스케치를 해보세요. 어떤 성경학자에 의하면 마태복음 5:1이하에 나오는 산상보훈이 안식일 아침에 행해진 일이라고 합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아침 일찍이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산에서 내려와서 가버나움으로 가시다가 길에서 문둥병자를 만나 고쳐주십니다.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백부장의 간청이 있어 그의 하인을 고쳐주고 회당에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설교하신 다음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자 반나절은 다 지났습니다. 이제 베드로의 집에 가서 잠깐 휴식을 취하려 하는데 거기에도 베드로 장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왔고 주님은 밤이 맞도록 그들을 치료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하루 일과를 정리해 보면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장 풍성한 말씀의 잔치가 그날에 있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장 풍성한 치유의 사역이 그날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때문에 어느날 보다 더 죄인을 섬기는 일로 바빴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절대로 한가로운 일이 아닙니다. 설교가 주는 부담과 출혈은 해보지 아니한 사람은 모릅니다. 병자를 고치는 일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편에서 희생을 의미합니다(막 5:3, 눅 6:19, 마 8:17, 사 53:4). 실로 예수님은 자신의 정력을 다 쏟아 말씀을 가르치셨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 일을 안식일날 더 많이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일은 더 복된 날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이날을 쉬셨지만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이날이 어느날 보다 분주하고 힘든 날이었습니다. 우리를 말씀의 초장에서 마음껏 쉬게 하시고 우리를 마귀의 권세와 질병에서 해방 받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오늘날의 주일은 영광을 얻으신 주님이 우리를 위해 축복하시는 날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안식일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복된 날입니다. 혹시 주일을 등한히 여기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깊이 반성하여야 합니다. 왜 영적으로 늘 메말라 허덕이고 있습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맛보지 못해 답답해 하십니까?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자신을 드리고 그 문제 해결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잠잠히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의 공허한 부분들이 가득히 채워지고 영혼은 다시 소성케 될 것입니다. 2. 헌신자를 위한 은혜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렀을 때 베드로의 장모는 열병을 앓고 있었는데 의사인 누가가 특별히 「중하다」고 진단한 것을 보면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태도를 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손을 만지셨다」 고 표현했고 마가는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주님께서 「열병을 꾸짖으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세가지를 종합해 보면 예수님은 환자의 손을 만지면서 열병을 꾸짖고 그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데 첫째는 너무 당연한 일처럼 고쳐주셨다는 점이고 둘째는 애정의 표시가 특별하였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서론도 없이 곧바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어루만지시면서 고치신 예는 성경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예수님은 베드로의 가정을 특별히 다루고 계셨던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원래 베드로와 안드레는 벳세다에서 살았지만(요1:44) 지금은 가버나움으로 집을 옮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질문을 놓고 동화같은 상상을 하는 학자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사라는 것이 그리 손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가정을 가진 베드로가 집을 옮긴 것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을 갈릴리 사역의 중심지로 삼고계심을 간파했던 까닭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쉴만한 안식처로, 전도의 거점으로 작정했을 것입니다(막 2:1, 3:20, 9:33). 베드로의 장모역시 대단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고전 9:5에 의하면 베드로가 오순절 후부터 아내와 함께 사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도 일찍이 주님을 위해 봉사해 온 여인이었습니다. 「수종 들더라」라는 동사가 계속적인 진행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베드로의 나이를 고려할 때 50-60대 초반이 아니었나 추측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데는 나이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주님을 위해서 기쁘게 봉사하는 사람을 주님은 사랑하십니다. 베드로의 가정은 오직 예수를 위해서 존재하는 가정이었습니다(눅 18:30). 이런 가정을 주님께서 아무렇게나 대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우리도 베드로의 가정처럼 전심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면 주님도 자기의 전부를 다하여 우리 가정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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