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 시점은 서울 성문 안에 14만5000명, 성문 밖에 7만5000명이 살던 시절. 사진 속 거리에는 장옷 입은 한국 여인, 기모노 입고 우산 쓴 일본 여인, 나비 넥타이 멘 일본인, 흰 도포 차림의 한국 남정네들이 어우러지고 침술소에는 ‘진동기를 이용한 안마’를 뜻하는 듯, 영어로 ‘ELECTORICAL ANMA”라고 적혀있다. 초가지붕의 둥글둥글 푸근한 선은 산등성이와 멋지게 어울리고 서양식 건물이 즐비하고 배가 가득 떠 있는 제물포는 영화세트 같다. 사진에 우연히 등장하지만 의미심장한 장면도 많다. 남대문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심히 성벽을 기어오르는 남자가 나온다. 성문이 닫힌 뒤 도성으로 들어오려는 것일 수도, 성문까지 걸어가느니 그냥 성벽을 넘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동대문에서 내려다본 풍경 한쪽에는 긴 칼을 찬 일본인들에게 끌려가는 한국인도 나온다. 로스는 사진에 관찰기를 자세히 곁들였다. “…전화선과 전차전선, 발전소에서 나오는 연기 등 새로운 문명의 증거를 놓치지 말고 살펴보아야 한다”고 적기도 했고, “부채를 들고 단정하게 자세를 취한 남성은 희극 오페라에 등장하는 배우 같다” “(지체높은 여성들은) 여름이면 대나무 가지로 만든 커다란 바구니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등 서양인에겐 이국적이던 풍경에 대한 단상을 실었다. 책에는 이 호주 사진가가 그 호기심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포착된 우리의 그때 그 시절이 펼쳐진다. 대만의 육군사관학교 수영교사인 그는 왼쪽 눈에 이상이 생겨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의 오른쪽 눈은 이미 젊은 시절에 사고로 시력을 잃은데다 엄청난 수술비는 물론 각막을 제공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매우 절망적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통사고로 죽은 운전수의 가족들이 각막을 제공해주겠다는 소식을 담당 의사가 알려왔다. 거기에 그의 아내가 그간 억척스럽게 모아온 돈을 내놓았다. 아내가 내민 통장을 바라보며 그는 새삼 아내가 처음 시집오던 날을 떠올렸다. 그는 열아홉 되던 해 부모님끼리의 일방적인 약속에 따라 결혼을 했다. 결혼 당일 처음 본 아내의 얼굴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아내는 기가막힌 박색이었다. 그는 신방을 뛰쳐나와 학교 기숙사로 숨어버렸다. 몇 달 후 그는 가족들에게 다시 집으로 끌려왔다. 어머니는 그를 앉혀 놓고 조용히 말했다. “얘야, 며늘아기가 박색이긴 해도 마음 하나는 어질더구나.” 그후 그는 두 눈 질끈 감고 아내와 한방에 들었다. 두 아이가 태어났지만 그는 여전히 아내를 부끄러워했다. 아내가 부지런히 돈을 모은 덕분에 생활은 나아졌고 딸아이는 교사로 아들은 군인으로 훌륭하게 잘 자랐다. 이 때 그가 덜컥 장님이 될 위기에 처해진 것이다. 수술을 받는 날까지 아내는 병원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붕대를 풀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던 아내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들지 못했다. 침울해 있던 딸아이가 소리친 건 그때였다. “엄마, 이제 털어놔요. 아버지에게 눈 하나를 드렸다구요!” 놀란 그가 억지로 아내의 얼굴을 돌렸다. 아내의 왼쪽 눈은 흐려 있었다. “금화, 왜 이런 짓을 했소!” 그는 아내를 껴안으며 울먹거렸다. 그가 아내의 이름을 부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당신은 소중한 제 남편인 걸요.” 아내의 흐린 눈에서 눈물이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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