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壓縮)의 힘 현대의 과학은 압축에 몰두하고 있다. 초경량 마이크로 칩에 상상을 초월하는 용량의 지식이 압축된다. 보다 작은 곳에, 보다 많은 것을 집어 넣는 싸움은 치열하다. 무전기 같던 모빌폰이 최소화, 다기능화 되어 가고 있다. 청소년들이 들고 다니는 소형 디지털 플레이어 생산을 위해 1mm축소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력은 압축의 원리다. 압축할 때 그것은 거대한 파워로 변신한다. 물질의 세계만 압축의 원리가 통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압축한 것이 묵상이다. 흐트러진 생각은 잡념이고 헛된 공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을 압축 시키면 생명이 흘러나는 묵상이 된다. 언어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보내면 공해요 소음일 뿐이다. 그러나 언어를 압축하면 언어에 파워가 붙는다. 어떤 이는 중국의 힘을 사자성어에 있다고 말을 한다. 사자성어란 곧 언어의 압축이다. 시는 언어의 압축이다. 시는 작가의 상상력과 생각의 풍부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절제했을때 나오는 문학의 형태다. 시를 읽는 사람은 표현된 언어를 뛰어 넘어 전혀 새로운 세계로 여행하게 된다. 표현과 비표현의 사이에 있는 언어를 독자에게 선물하는 것이 시다. 압축을 풀어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은 읽는 이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설교란 언어의 활동이다. 좋은 설교는 언어의 압축을 통해서 일어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은 줄이고 줄이는 것, 좋은 말이라고 길게 늘어 뜨려 놓으면 청중들은 마음에 둘 말을 찾지 못한다. 30분이라고 다 같은 30분이 아닐 수 있다. 언어의 압축은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위력이 있다. 목회자는 언어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언어를 가꾼다는 것은 불필요하고 지루한 언어의 가지 치기다. 때로는 반복이 필요한 때가 있다. 그럼에도 반복이 잔소리가 되지 않게 하려면 언어의 절제의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 성경은 언어의 압축이고 하나님의 절제의 결과다. 만약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했다면 보관은 물론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압축된 언어는 받아적고 싶다. 영혼의 뇌리에 깊숙하게 파고 든다. 그것은 단순한 말의 조각이 아니라 집약한 힘으로 화려하게 변신된 맛깔 나는 언어다. 압축은 영혼의 치열한 싸움을 요구한다. 어떤 작가는 몇줄의 글을 위해 밤새 몇수레의 파지를 낸다고 한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압축 파일에 수없는 돈을 물써듯 쏟아야 한다. 금방 식상해 하고 갈수록 화려한 첨단의 세계안에서 설교자는 도전속에 산다. 압축은 통달의 경지에서야 비로소 나오는 일종의 도의 수준이다. 연구와 묵상, 그리고 깊은 침묵안에서 절제되고 정제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의 언어가 탄생된다. 그래서 나는 준비한 설교의 원고를 들고 토요일 저녁, 언어와의 전쟁을 치룰 때가 종종 있다. 압축이 곧 능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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