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선교 동영상/항해일지 p.48
제목/어머니의 섬, 별학도
항해위치/별학도(경남 사천시 서포면)
배경음악/만유의 주재(노래-에미 그렌트)
상영시간/3분 53초
우리나라 427개 유인도 중에서 몇 개의 큰 섬 외에는 노인당이 되었다. 고갈된 바다에서 별로 수확할 것도 없고 또 학교가 없으니 아이들 공부를 위해서도 젊은이들은 섬을 떠났던 것이다. 노인들만이 쉽게 섬을 등지지 못하고 할 일이 있건 없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더해 가는 계절에 섬 선착장에 내리면 삭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전에 그렇게 흔한 개짓는 소리도 없다. 그런데 갯가나 밭고랑 모서리에서 인기척이 있는 것 같아 살펴보면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일하고 있었다. 가지고 간 초코파이를 서로 나누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고생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자녀들을 위해서'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별학도(경남 사천)의 오갑수씨(68세)와 고점순씨(63세) 부부도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다. 이 섬에는 이 부부만이 살고 있다. 보통은, 여러 세대가 살다가 이사를 가면서 세대수가 줄게 되는데 이 섬은 처음부터 이들 가족만 살았다. 나는 1991년 봄, 이 섬에 처음 온 이후 매 해 왔었다. 처음 방문 때 보았던 할머니는 어느 해부터인가 보이지 않으셨다. 이번에 오갑수씨는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했다. 워낙 말이 없는 분이신 데 자꾸만 더 말하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그 긴 이야기는 모두 자녀에 관한 말이었다.
이 분에게는 아들 둘과 딸 셋이 있다. 그중 큰아들을 외국 유학까지 보내면서 겪은 고생과 보람을 이야기 할 때는 목이 메이셨다. 나는 지금껏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섬으로 다니면서 인분을 져 나르며 삯을 받았다고 한다. 또 학자금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는 이거라도 하자 하는 맘으로 부인과 함께 캄캄한 바닷가에서 밤톨 정도밖에 되지 않은 굴(석화)을 새벽녘까지 쪼았다고 하셨다. 다행히 그 아들도 부모의 정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박사 학위 심사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고 이걸로 지난 서러운 고생은 보상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디에 모셨냐고 물으니 저기 뒷산에 있다고 하셨다. 먼저 간 영감님이 있는 육지 땅을 놔두고도, 아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평소의 말씀 때문이었다고 한다. -최종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