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례를 받은 지도 30년이나 되고, 집사라는 직책을 받은 것도 비슷한 햇수가 되는데도 한번도 만족한 예배를 드려본 적이 없다. 참으로 이름 그대로 돌 예수꾼이었다 다만 내가 예배당 문간방에 살면서 새벽종을 울리던 때가 진짜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특히 추운 겨울날 캄캄한 새벽에 종 줄을 잡아당기며 유난히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는 상쾌한 기분은 지금도 그리워진다. 60년대만 해도 농촌교회의 새벽기도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전깃불도 없고 석유 램프불을 켜놓고 차가운 마루바닥에 꿇어앉아 조용히 기도했던 기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교인들은 모두 가난하고 슬픈 사연들을 지니고 있어 가식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 중에 6·25때 남편을 잃고 외딸 하나 데리고 살던 김아무개 집사님의 찬송가 소리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애절했다. 새벽기도 시간이면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부르던 <고요한 바다로> 찬송가는 그분의 전속곡이었다. 마지막 4절의 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하면서 흐느끼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가난한 사람의 행복은 이렇게 욕심 없는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아침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출 때, 교회 안을 살펴 보면 군데군데 마루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고 그 눈물은 모두 얼어 있었다. ( 이 글은 채희동님 펴내시던 계간 <샘> 2000년 여름호(6호) 특집에 실렸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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