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는... 고대병원에 갔다가... 보라매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은 만원이다. 분주히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엔 어쩌면 그리도 똑 같은 사람 하나 없고, 그 배역은 저마다 다양한지 신기함을 금할 길 없다. 의사, 간호원, 환자, 보호자, 사무원, 은행원, 제약회사 직원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인간의 희비애락이 시시로 엇갈리는 곳,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고... 오랜 병고에서 쾌유의 기쁨을 얻어 나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희망을 안고 왔다 그대로 죽음의 길로 떠나고 만 이들 앞에 가족들의 통곡과 탄식이 끊이지 않는 장소가 또한 병원이다. 한편에선 웃고 다른편에선 울어야 하는 세상살이의 모순을 절감하는 곳, 병원의 긴 복도를 어둠 속에 걸어가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슬픈 망령의 모습이라도 떠올라서가 아니라 아직 살아 남은 자로서의 무거운 책임 의식 같은 게 고개를 쳐들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살고 있는 것일까? 언제 막이 내릴지 모르는 인생의 무대 위에 나는 열심히 주어진 각본에 열중하고 있는 것일까. 타인의 배역을 부러워하며 두리번거리다가 놓쳐 버린 시간들을 나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내가 숨쉬고 살아 있음이 놀라운 기적으로 생각되는 순간, 나는 타성에 매여 나태해진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모든 것이 자꾸 지나가는데 우린 그걸 모르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까요? 자기들이 살고 있는 일분 일초를 말예요. 장님 같은 생활이죠". 톤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라는 희곡에서 에밀리가 하는 말이다. 우리는 곧 늙어 가며 100년 이상을 살 수 없는 한정된 삶임을 알면서도 곧잘 허망한 것에 집착하여 세월을 허송하기 일쑤다. 새벽에 눈 떠서 아주 조금만이라도 내일은 불확실한 미래며, 오늘이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길 배운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깨어 있고 의식적인 삶을 소유하게 될 것인가... 언제 불림을 받을 것인지 이 우주와 인간을 다스리는 대연출가(大演出家)의 의도는 알 수 없다. "산 사람은 모름지기 죽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 소리가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 비가 온 다음 다시 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그를 기억하라"는 '전도서'의 말씀이 메아리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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