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이 있기 며칠 전 필자가 가르치던 고3 여학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방문했다. 부모님의 사이가 너무 좋지 않아서 괴롭다는 것이다.두 분이 이혼 직전까지 와 있는데 매일 너무 심하게 다퉈 공부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수능 시험은 눈앞에 다가왔는데 큰일이라며 기도를 부탁했다. 이 학생은 “며칠 전에는 너무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이번 수능 시험 망치면 다 어머니,아버지 책임인줄 아세요.내 인생은 두 분 때문에 다 망가졌어요”라고 말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착찹한 마음으로 이 학생 손을 잡고 기도해 주고 돌아서는데 문득 한 통계가 떠올랐다. 모 월간 잡지 부록으로 나온 신세대에 관한 자료인데 ‘부부싸움 10대 자녀들에 큰 상처’라는 글이다. 10대들의 눈에는 부모란 거의 싸우는 존재로 비치는 것 같다. 부모끼리 다투는 횟수를 알아 보았더니 ‘한 번도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응답은 13.7%에 불과했다. 무려 43.9%가 ‘부모들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싸운다’고 호소했다. 구체적으로는 ‘한 달에 한 두 번’ 26.2%,‘1주일에 한 두 번’은 13.7%였고, 부모가 ‘거의 매일’ 싸운다는 응답도 4.0%나 됐다. 예민한 10대 자녀들 앞에서 싸우는 부모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었는데 필자를 더욱 놀라게하는 통계는 그 다음 목록에 있었다. 부모님들 중에 ‘상대방을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는 행동’을 본 적이 있는지 여부를 물었더니 10대들의 32.9% 가 ‘있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그 빈도는 ‘가끔’이 32.1%로 대부분이었으며 ‘항상’이란 응답도 미미하지만 0.8%가 있었다.세 부모중 한 부모가 다툴 때 10대 자녀들 앞에서까지 폭력을 사용 한다는 답변은 필자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자녀 사랑에 유별난 공을 들이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실제로는 가정에서 가장 비교육적인 환경을 조성시키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하다. 필자가 가르친 제자 중에는 유난히 아버지를 혐오하던 학생이 있었다. 왜 그토록 아버지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의아해했는데 나중에 그 해답을 찾게 되었다. 어머니가 이 학생이 아주 어릴 때부터 무릎에 앉혀놓고 “난 결혼을 잘 못했어. 네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난 게 내 인생의 큰 오점이야. 넌 너의 아빠 같은 사람 절대 만나지 마라”라고 말해왔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에게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어린 자녀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어머니 인생을 망친 혐오스런 사람으로 과장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어머니는 본의 아니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 하는 딸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는 뼈아픈 상처를 심어 주었던 것이다. 자녀들에게 이런 류의 상처는 자주 경험되어 진다. 부부간에 불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의외로 큰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더구나 부부 싸움 후에 자기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녀를 불러놓고 “네 아빠 성격이 문제가 있어” “네 엄마는 상식이 안 통하는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행위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독약을 먹이는 행위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비싼 과외 시켜준다고 부모 역할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남들이 못먹는 값비싼 외국 음식을 사준다고 훌륭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보다는 부부간에 서로 화목하고 서로를 존경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부간의 화목이 가장 큰 자녀 교육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가정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탈선하는 경우를 필자는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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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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