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생긴 한 제자에게 정신적인 병이 찾아왔다. 그 아이의 부모는 딸아이를 낫게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더욱더 병이 깊어졌다. 그 아이는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스스로 삶을 포기해 버렸다.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이것보다 더 슬프고 절망 적인 일이 있을까? 최근 그 아이의 어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 어머니는 그 때의 절망적인 상황을 떠올리면서 마치 폭풍우 몰아치는 밤바다에 홀로 발가벗은 채 내동댕이쳐진 듯했다고 회상했다. 그날 필자는 그 어머니에게서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딸아이의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부부가 밤 새워 찬양을 했다는 것이다. “풍랑 이는 바다 위로 걸어오시고, 갈릴리의 험한 풍파 잔잔케 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위하여 눈물짓고 기도하신 고난의 주님” 등등. 왜 부부는 그 절망적인 밤, 밤 새워 찬양을 했을까? 모르긴 해도 “딸을 먼저 보낸 너희 가정은 이제 끝났어. 절망과 저주만 남았어”라고 불신을 유혹하는 악한 마귀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결코 정죄 당하지 않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 였다. 필자가 그 가정을 생각하면 민수기 14장 28절 말씀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열두명의 정탐군 중에서 무려 열명이 절망적인 보고를 했다. 적들을 보니 그들이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절대 이길 수 없겠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민족을 메뚜기처럼 초라한 존재라고 비관했다. 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 통곡하며 절망했다. 하나님을 원망했다. 함께 정탐을 다녀온 여호수아와 갈렙이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했지만 그 선포는 백성들의 통곡 소리에 묻혀버렸다. 민수기의 이 말씀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지침이다. “죽겠다, 죽겠다”하면 정말 그렇게 해주겠다는 것이며 반대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면 역시 그렇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법칙이 가정에 그대로 적용됐다. 그날 밤 고통 중에 드려진 그 부부의 찬양은 응답되었다. 상처는 치유되었고, 그 부부는 지금 각자의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놀랍다. 비록 어려운 상황에 있을지라도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겠다”고 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절망 중에도 소망의 찬송을 드리자.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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