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 때문에 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 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복을 위해서 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내 죄를 사함받기 위해 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죄 사함을 위해 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내 믿음 성장을 위해 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연약한 사람의 믿음 성장을 위해 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내 건강을 위해 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건강을 위해 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내 자녀의 행복을 위해 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위해서라면 하루 종일 울어도 모자람이 없지만 남을 위해서라면
한 방울의 눈물도 아까워한다.
기도할 때마다 늘 우시던 장로님이 계신다. 나형렬 원로장로님이시다. 기도를 인도하실 때마다 늘 울음으로 목이 메인다. “하나님 아버지!” 하고는 목이 잠겼고, “사랑 많으신 예수님!” 하고는 말을 잇지 못하셨고, “우리 목사님!”하시고는 눈물을 삼키셨다. 남보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다. 은혜가 많아서이다. 세련되지 못해서가 아니다. 마음이 맑고 깨끗해서이다. 절제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주님을 생각하는 사랑이 컸기 때문이다. 일부로 보이기 위한 눈물이 아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시는 감격의 눈물이다. 자신의 처지가 불쌍해서 우는 슬픔의 눈물이 아니다.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구령의 눈물이다. 무얼 더 달라고 보채는 눈물이 아니다. 하나님께 더 열심을 내고자 하는 눈물이다.
강소희 공로 권사님의 기도를 들으며 또 울컥 눈물이...
장로님의 자녀들만 잘 되게 해 달라고 비는 눈물이 아니다. 모두가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눈물이다. 장로님 가정만 구원받겠다고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모두가 구원받기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모두를 위한 기도의 눈물이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흘리는 아름다운 눈물이다.
이런 아름다운 눈물로 인해서 교회가 평안해진다. 이런 아름다운 눈물이 있기에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며, 교회가 부흥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분명 장로님은 눈물이 많다. 그러나 아무도 울보라고 놀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앞에서 머리가 숙여진다.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베드로의 눈물 손수건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