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
빌 2:25 210124
지난 주일 오후에 어느 장로님께서 저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셨다.
목사님 모두들 보고 싶기도 하고 또 대면 예배가 너무 드리고 싶어 교회 갔다가 인사도 못 드리고 그냥 내려왔습니다. 아프시다고 하던데 지금은 좀 어떠신가요?
이런 문자다 이 문자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장로님은 아주 먼 곳에 사신다. 승용차로 교회에서 집까지 30-40분 걸리는 곳이 아니다.
그보다 / 배나 더 걸리는 곳에 사신다. 그래도 그동안 주일이면 1부 예배를 드리시고 찬양예배까지 참석하셨다
그러나 거리두기 강화로 교회에서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자 집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시다가 지난 주일에는 1부 예배에 오셨던 것이다.
얼마든지 집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영상으로 예배를 드렸으니 이것으로 됐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상예배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뭔가? 그리움이다.
오늘 우리의 문제가 있다 이것은 그리움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어떤 곳인가? 교회는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모두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교회는 따뜻한 온기가 있는 고향 같은 곳이다. 왜 사람들이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고향에 가려고 하는가? 거기가 그리움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렇다 그리운 엄마 품속 같은 곳이 교회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요즘 사람들은 교회를 특별히 믿는 사람들조차도 교회를 그리움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장로님에게서 그 그리움이 있는 것을 보았다 교회에 대한 그리움 예배에 대한 그리움 성도들에 대한 그리움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 이것이 나를 뭉클하게 했다.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했다. ‘그리움이야말로 낯선 곳을 방랑하는 자신을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궁극의 실재’ 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그리움을 간직하며 그리움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그리움은 합리성과 효율성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려고 해도 과학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인공지능이 도저히 뛰어 넘을 수없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영역이 더 넓어질수록 그리움의 가치는 더 올라갈 것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인간들의 최후의 무기 가운데 하나다. 우리 모두 그리움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전에 대한 그리움 예배에 대한 그리움 성도의 교제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 땅을 넘어 저 본향에 대한 그리움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이런 글이 있다(양광모.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통은 그리움이라 하지요. 어려서는 어른이 그립고, 나이가 드니 젊은 날이 그립다.
여름이면 흰 눈이 그립고, 겨울이면 푸른 바다가 그립다. 헤어지면 만나고 싶어서 그립다.
돈도 그립고, 부모님도 그립고, 내 사랑하는 모두가 자주 그립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어떤 사람은 따뜻했고, 어떤 사람은 차가웠다. 어떤 사람은 만나기 싫었고, 어떤 사람은 헤어지기가 싫었다.
어떤 사람은 그리웠고,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나를 그리워 해주고, 나도 누군가가 그리운 따뜻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이 글을 쓴 이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워하는 일일 게다.
여름이면 흰 눈이 그립고/ 겨울이면 푸른 바다가 그립다 헤어지면 만나고 싶어 그립고/ 만나면 혼자 있고 싶어 그립다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이 되자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사람이 그리워해야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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