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의 백합화를 보라
2016년 7월10일 교육관 앞 꽃밭에 핀 백합꽃 모습입니다. 꽃을 심으신 성도님들과 꽃을 가꾼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7월의 꽃이 있다.
백합이다. 순 우리 말로는 백합이다.
그러기에 공동번역이나 새번역 성경에서는 나리꽃이라고 번역했다. 전해오는 백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에덴동산에 살고 있던 아담의 아내인 하와는 하나님께서 먹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 동산 중앙에 있는 과실을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때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는 마침내 먹지 말라는 열매를 따 먹었고 그때부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에덴동산은 추위도 더위도 없는 항상 좋은 날이었는 데 쫓겨난 세상은 혹독한 추위와 타는 듯한 무더위가 있고 얼굴에 땀을 흘리지 않고는 먹을 것을 얻지 못하는 수고와 괴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하와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날을 보냈는데 어느 날 그 눈물이 땅에 떨어져 하얀 나리꽃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지상 최초의 흰 백합이라고 한다.
한편 빨간 백합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그때 모든 꽃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고 피어있는데 유독 백합만이 자기의 아름다움으로서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다고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었다.
그때 구름 사이로 달빛이 훤히 비추자 나리는 다른 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시름에 잠겨있는 것을 보았다.
이후 나리는 자기가 교만했던 것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는데 그때부터 붉은 백합꽃이 생기고 위를 보지 않고 옆을 보고 피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합은 성경에 상당히 많이 나온다. 먼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다.
호세아 선지자는 매일 아침 내리는 이슬을 맞고 “그가 백합화같이 피겠고”(호 14:5)라고 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할 것”(사 35:1)이라고 예언했다.
또 백합은 순결과 결백의 상징으로, 성모 마리아의 중요한 속성이며 정결과 순수의 개념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1장에 보시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고 알려주시는 수태고지(受胎告知)의 말씀이 있다.
이 수태고지(受胎告知)의 상황을 그림으로 나타낸 수많은 화가들이 있다.
이 중에 로세티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수태고지’의 그림을 보면 천사가 손에 꽃을 들고 있다. 백합이다. 백합이 순결과 정결, 순수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활절이 되면 교회마다 백합으로 강단을 장식한다.
백합은 또한 주로 아름다움을 형용적으로 표현할 때 인용됐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아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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