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황수관 박사님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1997년 7월 15일
코로나19로 힘들어 하는 이때... "신바람 건강법 세미나"를 강의하신 故 황수관 박사님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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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수관 박사가 연세대 교수로 들어가게 된 일화 (실화 이야기) 연세대학교 의학대학교에서 재직한 황수관 박사의 연세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일화이다. 황수관 박사는 미국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의학박사 학위를 마치고 박사 자격을 획득한 뒤 우리나라로 왔다. 그러나 젊은 황박사를 알아주는 대학교는 한 곳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강원도의 한 대학교에 시간 강사로 다니게 되었다. 매임 아침에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갔다가 오후 늦게 버스로 서울의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30여전전의 강원도 가는 도로는 국도로서 비포장 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차멀미를 많이 하는 험한 길이었다. 황박사는 이곳 시간 강사가 유일한 수입원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 날마다 열심히 학교에 출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같이 앉아 있는 중년 여인이 너무나 멀미를 많이 하는 것이었다. 토하고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의 여인을 열심히 의사의 실력으로 도와주었다. 버스가 서울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린 여인이 황박사에게 명함 한 장을 달라고 하여 황박사는 명함을 주고는 헤어졌다. 며칠이 지난 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한번 방문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황박사는 아무 생각 없이 연세대학교 의과다학 학장실을 찾아 갔다. 학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학장님이 일어서면서 반갑게 맞이하였다. “며칠 전에 강릉에서 서울행 버스에서 멀미 한 여인을 도와 준 일이 있습니까?” “ 예, 멀미를 너무 심하게 하여서 좀 도와주었습니다.” “ 그 여인이 내 부인이었습니다. , 너무나 멀미를 한 자기를 잘 보살펴 주어서 한 번 만나 보라고 해서 불렀습니다. 강릉까지 다니려면 힘들 텐데 우리 대학교에서 같이 근무 합시다.” 학장의 말을 들은 황수관 박사는 깜짝 놀랐고, 또 연세대에서 근무하기로 취업이 되었다. 이 때무터 황박사는 학생들에게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같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박하고 허심탄회한 성품으로 방송과 각종 집회에 초대 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게 되었다. 우리도 열심히 남을 도와 주다 보면 이런 큰 복을 받을 수 있지 않을 까요? ( 황수관 박사의 강의 중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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