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입니다. 1년의 반을 보내고 다시 반이 시작되는7월입니다. 7월도 의미 있게 보내겠습니다. 지금까지 행복한1년을 준비했다면 앞으로는 행복의 주인공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을 나누면서 보태겠습니다. 7월에는 친구를 만나고 주위를 돌아보며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겠습니다. 부지런한 나를 위해 박수를 치겠습니다. 하지만7월도 사랑이 먼저입니다. 7월 내내 웃으며 보낼 수 있게 내가 나에게 사랑을 선물하겠습니다. 건강한7월, 웃음 가득한7월로 만들어 마중 나온8월을 만나겠습니다. 사랑한다고 내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윤보영 님의 ‘7월은 행복한 선물입니다’라는 시다. 7월은 어떤 달인가? 7월은1년12달 중반을 보내고 다시 반이 시작되는 달이다. 이런 면에서7월은 아무 것도 안하는 달이 아니다. 다시 시작하는 달이다. 후반을 다시 시작하는 달이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는 달이다. 7월에 무엇을 하시겠는가? 이런 말이 있다. “끝날 때까지 아직 끝난게 아니다.”
느헤미야를 보자. 우리는 느헤미야에게서 인생의7월, 인생의 후반전을 본다. 느헤미야는 인생의 전반전에서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이었다. 노예로 끌려 온 이스라엘 출신이 바사 제국의 술관원이 된 것도 대단한 일이다. 이런 자리에 오르려면먼저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왕의 신임을 받아야 한다. 인정을 받지 않고는 도무지 맡을 수 없는 직책이다. 그러나 그는 아닥사스다 왕을 섬기는 술관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왕의 시종이 아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으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고 실종된 성전 예배를회복한 하늘의 사람이 되었다.
7월이다. 7월이 되었다는 것은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7월을 어떻게 살겠는가? 느헤미야는 인생의 후반전에 더 잘 살았다. 왕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살았다. 왕과 함께보다, 하나님과 함께 살았다. 왕을 기쁘시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았다. 왕의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
결국 그는 인생의 후반전에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없다”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중보기도의 기도의 사람이 없다”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모두 끝날 때까지는 아직 끝난게 아니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하자. 늦게 핀 꽃이 아름답다는 말처럼 인생의 후반이 더 아름답기를 소원한다. 느헤미야처럼 아름다운 신앙의 꽃망울을 맺고 신실한 믿음의 꽃을 피우고 기도의 열매를 거두는 아름다운 삶을 살라.
이화영 목사<금호교회>
시(詩)를 통한 말씀 묵상(1)
[[제1648호] 2019년 7월 6일]
이런 시가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방문객’이라는 시다. 어느 의사가 이 시를 읽고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이 시를 좋아한다. 의사로서의 직업의식 또는 소명을 이 시만큼 극명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들을 진료실에서 만난다. 난임 여성의 절반 이상은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 심각한 정서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놀랍게도 난임이 주는 스트레스는 전이가 진행된 암과 같은 위중한 질환 수준으로 그 강도가 높다고 한다. 난임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러한 정서적 문제는 깊어진다. 이렇게 임신 실패를 거듭한 고통스러운 과거를 안고 그래도 소중한 아기가 찾아와 줄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오늘 다시 용기를 내어 많은 여성이 난임 클리닉을 찾는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이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을 필자를 포함한 의료진과 연구진이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진료 현장에서 늘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이 오는 어마어마한 일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은 열정과 성심을 다해 진료에 임하게 하고 무엇보다 그분들의 정서적 어려움에 좀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근간이 된다.”
이런 의사를 만난 환자는 행복하다. 환자를 돈이나 시험도구가 아닌 병원을 찾은 소중한 손님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그 사람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며 치료에 전념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어떤가? 교회도 이래야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며 반갑게 맞아야 한다.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상한 마음이 온 거라며 감싸 안아야 한다. 그의 일생이 온 거라며 온 교회가 환대해야 한다. 목회는 무엇인가? 목회도 이래야 한다. 만남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의 부서짐을 아파해야 한다, 부드러운 바람처럼 예수님의 마음으로 품어야 한다. 직업적이 아닌 소명으로 일해야 한다. 이런 교회를 만난 성도는 행복하다. 교회 온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방문객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도 분명 어딘가 부서진 데가 있을 거라며 감싸 안고 사랑하며 기도하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신앙의 방황도 인생의 방황도 끝나기 때문이다.